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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명함

2013/02/05 20:46 / 직장이야기
지난 여름엔가.. 제가 참여하고 있는 과제의 연구책임자가 워싱턴 주립대(University of Washington) 교수인 Michael Katze로부터 책을 한권 같이 쓰자는 제안을 받아서, 여러 사람들이랑 책을 한권 썼습니다. 저도 두 페이지 정도로 써달라고해서 제가 하는 분석기술들이 여기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에 대해.. 개략적으로(?) 썼었는데..  그러고는 잊어버렸지요..

그런데 2주 전쯤, 예상에 없는 택배가 사무실로 와서..
이게 뭔가 하고 열어봤더니.. 출판된 책을 출판사에서 보내왔네요.... 
겨우 두 페이지 썼는데... '참' 부끄럽네요. 하하 260 page 중에 2 p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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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여러명이 같이 쓴거라서.. 총 저자가 40여명쯤 됩니다. ㅋ Contributor list를 보니 저의 이름도 있네요..
밑에 보이는 이름들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오른편에 보이는 Bernhard Palsson 교수님 (UC San Diego)이시지요.
'시스템 생물학'의 대가 중에 한명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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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오늘 저의 직장 명함이 나왔습니다. 심플한가요?
다음주에 캘리포니아 출장가서 좀 써야 할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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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 내부 우편함에서 놀란것은 지난 석달 정도 인턴쉽으로 미생물 그룹에 와 있었던
콜로라도 주립대 대학원생 아가씨가 땡큐 카드를 놓아두고 떠난것입니다.
제가 그 아가씨 실험 분석을 좀 도와줬는데.. 조금(?) 고마워하는 듯한 내용이네요.. 
(뭐 그렇게 결과가 좋지는 않았는데 말이지요.. ^^a)
잠시 들은 바로는 졸업하고 PNNL에 Post-doc하러 오고싶다고 했다는데요,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네요.
지난 경험상 인턴이나 잠시 비지팅으로 오는 대학원생들은 기간이 되면 그냥 휙 가버리는데요..
이 친구는 좀 다르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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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상황은 많이 다르고, 매우 오래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제가 교류 프로그램에 선정되어서,
독일 함부르크 대학이나,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에 잠시 방문했을때가 생각이 나더라구요..
소속 기관이 아닌, 다른 곳을 방문해서 뭘 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거든요...ㅎ
2013/02/05 20:46 2013/02/05 20:46
crinite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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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박사 학위 받고, 이곳 미국 워싱턴주 Richland에 온 지도 3년하고 몇달이 지났네요.
여기 질량분석 연구팀에서 박사후 연구원(Post-doctor)으로 그 동안 일을 해 왔는데요....
지난 1월 1일부로, 제가 있는 그룹에서 저를 정규직 연구원(Scientist)으로 전환을 해 주었습니다.

사실, 저의 보스의 요청으로 지난 8월 경에 정규직 전환 프로세스가 시작될뻔 했는데요
윗선, 매니지먼트 그룹에서 제 이력서(CV) 회람되고, 어떤 level로 고용되느냐에 대해 이야기가 오가던 즈음..
'아주 높은 분'께서, 11월에 있는 대통령선거에서 누가 되느냐에 따라 향후 연구비 판도가 바뀌니
선거 끝나고 나서, 다시 논의하자라고 하셔서.. 그냥 그 한마디에 취소되었었습니다. T.T
사실, 저의 보스의 연구비가 충분하면 저를 바로 고용할 수 있겠지만, 저의 보스도 Junior라 연구비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 위의 힘있는 사람의 연구비 도움을 받아야지만 저를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는 거죠...

11월 초, 선거가 끝나고,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이 결정되자,
다시 매니지먼트 회의가 열렸는데, 제 보스가 회의 마치고 와서 하는 말이..
'그 높은 분' 분께서, 비록 선거는 끝났지만, 아직 재정절벽(Fiscal Cliff) 문제가 남아 있으니 내년에 논의하자고.. T.T
저도 이제는 기다리기가 좀 곤란하다는 뜻으로 다른 자리 알아볼수도 있다는 뜻을 조금 내비치니..
제 보스가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말'과 함께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ㅋ
그리고 자기가 해보고 정 안되면 그때 알려줄테니 그때 다른 자리 알아보라고......

제가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여러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재미도 있고 데이터도 잘 나오는것이, 미생물 그룹 (Microbiology Group)과의 공동연구입니다.
제 보스가 여기 미생물 그룹 그룹장 및 높은 사람들과 회의를 한 다음에,
저를 우선 미생물 그룹으로 고용을 하고, 제 보스가 연구비를 마련하면(?)
다시 데리고 오는 것으로 협상을(?) 했나봅니다. ㅋ
아무튼, 이러한 우회적인 협박(?)의사가 우리 그룹 매니지먼트쪽에 전달되니깐..
우리 그룹에서 조금은 긴장하며 회의를 했나봅니다. 그리고는 결국 저를 전환 시키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우리 그룹은 인원이 대략 100명정도 되고, 박사후연구원 과정이 평균 30여명 정도 됩니다.
그 중에 1년에 1-2명 정도에게 정규직 전환의 기회가 주어지는데요.
제가 여기서 일하는 동안 총 5명의 post-doc이 우리 그룹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1년에 2명이 안되는데요, 그중에 4명은 미국인, 1명은 중국계 캐나다인이였습니다.
미생물 그룹장의 압력이 없었더라면, 아마 저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저같은 VISA를 가지고 있는 외국인은 더더욱... ㅎ

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신규 고용와 똑같이 법으로 외부 공고를 1주일간 내야 했고
인터뷰도 똑같이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12월 중순에 높은 분들 5명과 개별 인터뷰도 했는데요..
우리 그룹의 현실을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우선,
'그 아주 높은 분'께서는 남들과 비슷하게 해서 되는게 아니고, 더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또 어떤 분은.. 우리가 아주 어려운 시기에 아주 어려운 결정을 하는 거라고... 압박을.. T.T
                    회계년도 2014년의 우리그룹의 연구비가 위험하다고...
또 어떤 분은.. Post-doc은 job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더군요.
                   그 분이 하는 말이.. "Any job is a good job now"라며...
                   요즘 Ph.D. 받고 연구할수 있는 포지션의 직장 구하기가 엄청 힘들다고...
                   미국에서 매년 나오는 Ph.D.숫자가 어마어마하고, 또 외국에서 많이 들어온다고..
                   지금은 미국에서도 많은 수가 Industry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또 어떤 분은.. 미국 내셔널랩의 스탭이 되는 것은 야구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내셔널랩의 연구는 규모가 큰 연구가 위주이다 보니..
                   공동연구(야구에서 수비)할때 각자의 포지션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것은 잘 해 내야하고..
                   논문을 쓸때(야구에서 공격)는 홈런, 안타를 치듯이 잘써서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써야 하는거라고..
또 어떤 분은.. 에너지부 내셔널랩의 Entry Level Scientist는 학계의 조교수 급이니..
                   항상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면서... 실력을 배양하라는.....  

암튼, 이러한 인터뷰도 모두 끝나고 1월 1일부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Post-doc offer를 받을때는 엄청 두꺼운 바인더에 갖가지 서류들이 들어 있었는데,
Staff 전환 offer는 pdf 화일로 딱 2 page 오네요.
하나는 연봉이 적혀 있는 정식 job offer, 또 한장은 Benefit 변경사항이었습니다.

정말로 '운'이 좋았습니다. 제가 하는 분야가 우리그룹, 특히 우리 보스에게 필요한 것이였거든요.
사실 우리 보스가 한국에서 학위한 저를 post-doc으로 뽑았던것도 상당히 큰 도박이었는데요
이렇게 될줄은 저도 몰랐네요. 아무튼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연구해야 겠습니다.

아참! 혹시나 오해하실지 모르겠는데요....
미국의 내셔널랩 Staff은 정규직이고 정년 퇴직할때까지 근무 할 수 있지만
한국의 정년보장 정규직과는 개념 자체가 다릅니다. 즉, 연구비가 없으면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도 5년 정도의, 즉 2018년까지의 연구비는 보장이 되어있고 (고용을 위해),
그 이후에는 제가 연구비를 직접 따오던지, 다른 연구팀에 기여해서 연구비를 받던지...
어떻게든 연구비를 받아와야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보통 미국 대학 조교수랑 비슷하더라구요.

만일 한국의 국립연구소나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정규직 선임 연구원급들을 해고하면 어떻게 될까요?
현재의 한국의 시스템은 그럴리도 없겠지만, 상상이 불가하죠..

2013/01/12 23:25 2013/01/12 23:25
crinite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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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무연나연외삼촌 2013/01/14 03:46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Congratulations!!! 영모야~~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던거처럼 더욱 열심히 해서 니가 바라는 Job을 계속 할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건강하고!! ^^

    • crinite 2013/01/27 00:27  편집/삭제  댓글 주소

      감사합니다. 단지 제자리에 서 있기 위해서라도 뛰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ㅋ

  3. 정재승 2013/07/17 05:23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반년이 지났지만....^^ 이제 소식 알았으니! ^^;;
    축하한다. 미국에 계속 남게 된 상황이네.

    • crinite 2013/07/17 20:09  편집/삭제  댓글 주소

      벌써 반년이 지났구나... 어흑!

      얼마나 오랬동안 있을지는 모르겠네.... ^^

지난주에는 과제일로 해서, 몬태나 주립대를 2박 3일간 다녀왔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항상 뭘 잘~ 분석해내는 일인데,
좀더 정확하게 자연 현상을 분석해보겠다는 취지로 거기 공동연구 하는 교수님이
저보고 직접현장을 방문해서 살펴보고,
더 나은 방법이 있는지 같이 고민해보자고 해서 가게 된 출장이였습니다.

여기서 비행기타고 Salt Lake City를 경유해서,
몬태나주립대가 있는 Bozeman이라는 도시에 도착하였습니다.
나무로 지어진 공항... 조금(?)은 신기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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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연구실에서 누군가가 마중을 나와줘서,
같이 자동차로 Bozeman 시내를 한번 구경하고 Montana 주립대로 들어갔습니다.
생각보다 꽤 크던데요..?
우선 연구실로 먼저가서 몇가지 중요한 일정을 점검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갑자기 나보고 여기 캠퍼스내에 한국식당이 있다고 해서,
제가 정말 한국의 Authentic 식당인지 평가해주겠다고 해서 같이 갔습니다.

헉. 정말 한국식당이 캠퍼스 안에 있더라구요, 들어가보고는 더 놀랐습니다.
민족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이시랍니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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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내내 연구회의하고, 다음날 아침에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아~ 이번에 드디어 브라운 베어를 봤습니다. (멀리서 봐서 그리즐리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요.. )
밑에 보이시나요? 곰 맞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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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서 하는 일은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특정지역에서 채취된 시료에서 유기물들은 분석하는 것인데요..
아래와 같이 엄청 뜨거운 연못에서 채취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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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제가 온도계를 대고, 재어보았는데요, LCD에 보이시죠? 섭시 83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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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 9월에 있을 실제 시료채취때는 발전기를 가지고 올 예정이지만,이번에는 방법 평가때문에
자동차 밧데리로 간단한 전기를 만들어 썼습니다. 제 앞에 있는 친구는 저보다 2살 많은 거기 대학원생..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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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다음날도 거기 그룹과 계속 회의를 하고, 오후 늦은 비행기로 돌아 왔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어딜 가면, 배우는게 더 많았었는데,
요즘은 대학교에 출장을 가면, 그곳에 대학원생들에게 가르쳐주는 일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제가 늙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건가요? ㅋ
2012/07/30 23:10 2012/07/30 23:10
crinite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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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예산을 편성하다 보면
비록 많지는 않아도 회의비라는 항목이 일정 비율 존재하고,
그 회의비를 이용하여 과제 관련 참여인원들이 회식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요.

그 돈은 누군가의 개인의 지갑에서 나오는 돈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식사를 서로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할 수 있지요...
물론 한도가 있고, 정부 지원 연구비라면 국민의 세금이기도 하지요.

한국인의 정서상에는 이러한 회식 문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고,
정을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살기 힘든 각박한 한국의 사회에서
어쩌다 보니 이것이 전통(혹은 악습?)처럼 되어버린 셈이지요.
물론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개인적인 친분도 쌓을 수 있겠지요.
물론 그 부작용도 많지요. 일과 후의 개인시간을 상당히 뺏아가니까요...

여기에 동반되는 또 다른 문제는 음주이지요.
저도 어느 정도의 음주를 즐기는 편인지라 긍정적인 부분이 많지만, ^^
공식적인 회식자리에서의 음주는 참 힘든 주제죠?
사람마다 생각과 판단기준이 다르지만, 그래도 강권하는 사람만 없다면 괜찮은것 같은데요.. ^^a
(앗! 내가 후배들에게 강권한 적이 많이 있던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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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립연구소는 어떨까요? ㅎ
저 여기 온지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리고 그 동안 큰 프로젝트 2개, 작은 프로젝트 2개에 참여하고 있는데
지난 주 목요일에 처음으로 과제 회식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여기는 연구비로는 회식 지원이라는게 없는 것 같더라구요.
몇몇 과제의 연구계획서를 봐도 인건비만 과도하게 잡혀있고
(미국은 과제 연구비 중에 인건비 비율이 매우 높지요, 물론 간접비가 훨씬 더 크지만..)
나머지 기기 구입비&재료비와 출장비, 학회참가비 등등이 편성되어 있던데요...
회식비라는 것은 없는 것 같더라구요.
(아 물론 제가 볼수 없는 곳에 편성이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ㅋㅋ)

아무튼, 그 동안 회식이라는 것은 전혀 없다가...
제가 참여하고 있는 에너지부 지원을 받는 큰 프로젝트 하나가
이번에 5년의 총 연구기간 중에 2년을 마치고 중간 실사(점검)를 받게되었습니다. (과제 과정 중에 한번씩 편성)
Washington DC의 에너지부 담당 공무원들이 외부평가단으로 초청한 인사들을 대동하여
이곳 PNNL에 이틀 동안 머무르며 Site-Review라는 것을 하고 갔는데요..

부실하게 평가를 받으면 남은 3년의 예산이 삭감될 수 있습니다.
특히 첫날이 아주 중요했는데, 과제 책임자와 세부책임자들이 진행상황 발표하고 예산 집행부분 점검하고
포스터 세션을 통해서 세부 연구현황 토의하고...그러면서 하루가 지나갔지요.
다음날은 세부 회의와 질의 응답, 그리고 연구실들을 직접 둘러보는 일정이였습니다.

이 과제는 제가 있는곳의 과학자 한분이 총책임자를 맡고 있고, 세부 책임자들은 미국 전역에서 참가중입니다.
동,서부의 여러 대학교 교수님들과 다른 내셔널랩의 연구원들, 그 외에도 많은 연구소 인력들이지요.
아무튼 첫날 저녁에 과제 총책임자와 세부책임자, 참여자들이 모여서 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워싱턴 DC에서 온 연방공무원들과 외부 평가단은 전혀 같은 자리를 할 수 없고, 같이 회식을 하지도 않더군요..

흐...그런데... 이 회식의 타이틀이 뭔지 아십니까?  "No-host dinner" 입니다.
즉, 자기가 먹는 비용은 자기가 내는 거죠...
참고로 이 과제는 1년 연구비가 약 500만불 정도 됩니다. 55억?
이렇게 큰 과제를 해도, 1인당 20-30불 회식 지원도 안되는 셈이지요.
그날 25명 정도 참가했으니.. 겨우(?) 700-800불 이면 될텐데요......

다들 맥주나 와인도 시켰는데, 그것 또한 당연히 자비...
저는 하이네켄 병맥주 하나를 마시면서 이야기 했지요. (운전도 해야 했고..)

한국은 어느 기관이든, 회식비를 결제하기 위한 법인카드 시스템은 정말 대단히 잘 갖춰져 있지요.
우리나라의 모든 국공립 기관이 회식비 항목을 없애고, 자비로 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상상하기 힘듭니다. --;;

2011/09/12 23:55 2011/09/12 23:55
crinite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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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상 2011/10/13 06:32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ㅋㅋ 오랫만. ㅋㅋㅋ 회식비/판공비/품위유지비/업무추진비/특정업무유지비인가? 암튼 여러모로 있지.ㅋㅋ

    • crinite 2011/10/16 23:42  편집/삭제  댓글 주소

      한국 직장 문화에서 회식이 없으면,
      사람들은 아무일도 못한다고 할것 같은데?
      이게 다~~ 비즈니스라고... ㅋㅋㅋㅋ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직업들이 있지요.

하지만, 그 중에 제가 걷고있는 과학자라는 직업! 어릴때는 단순히 뭔가 재미있는 자연 현상을 분석하고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만 인식을 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엄밀히 말해 순수한 과학자 보다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숙련된 기술자라는 개념에 가깝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고.. 지금의 나를 엄밀히 살펴봐도 순수 과학자라기 보다는 기술자쪽으로 단련된 느낌을 받지만... 그래도 어차피 과학자는 과학자이긴 합니다.

암튼, 각설하고 이러한 과학자라는 직업에 대해 가장 적절한 표현을 골라보라고 하면, 저는 '신선놀음' 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신선은 아시다시피 도교사상에서 나온, 도를 닦아 영생을 얻게된, 즉 세상을 초월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구요.. 신선 놀음이라는 것은, 세상의 근심/걱정 모든 것을 잊고, 그저 하고 싶은 것을 즐기는 그 자체를 신선놀음이라고 하지요. 바둑을 둔다거나 멋진 자연환경을 친구삼아 술을 마신다거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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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과학의 근본은, 정말 신선놀음이 아닌가 합니다. 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즉, 이거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도 주고, 실험 기자재 및 각종 시약, 그리고 기타 등등의 지원을 해 주니깐요. 물론 요즘 세상에서는 어떠한 조직에 들어가서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긴 하겠지만, 그리고 예상한대로 잘 되지 않을 때는 실적에 대한 압박감이 크겠지만, 하는 일 자체는 정말 신선 놀음이 아닐까 합니다.

잠시 딴 이야기로 방향을 틀어서, 중세의 유럽은 기독교의 통제와 억압으로 인해 학문적 암흑기를 보냈지만, 십자군 전쟁때부터 동방에서 가지고 온 많은 새로운 지식과 발명품들을 통해, 모든것이 신의 뜻이라고 믿고 따르던 유럽 사람들을 일깨워 인본주의 계몽운동, 즉 르네상스가 일어나게 되지요.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의 그늘을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는 사고를 가지고 되고, 자연현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해결해 나가기 시작, 많은 발명, 발견들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했던 것 처럼요... 

하지만,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러한 시기에 등장한 많은 근세 유럽의 과학자들이 어떤 사람이였냐는 것이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 시대 정말 '신선놀음' 하던 사람들이지요, 바로 귀족들! 단순히 귀족이라는 핏줄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하는 일 없이 먹고 자고 하인들이나 평민들을 노동력으로 만들어지는 수입을 얻고, 평생을 그렇게 보낸 사람들. 우리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 '잉여 인간들'이었겠지만, 뭐 나름대로는 그 시대 바쁘게 살았겠지요. 주색잡기에 빠져서 삶을 보낸 사람, 전쟁광이여서 계속 왕을 부추겨 전쟁을 일으켰던 사람들, 하지만 그러한 귀족들 중에는 자연현상에 호기심을 가졌던 몇몇 똑똑한 사람들이 새로운 과학적 결과를 많이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낡은 중세 시대의 사회체제가 바뀌는 계기인,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미국이라는 실험적인 나라가 만들어지면서, 그때부터는 직업적 과학자가 생겨나게 되지요.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  더이상은 신선놀음이 아닌, 현실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세상으로 바뀐 것이지요. 그래도 그 과학이라는 자체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호기심 충족! 국가와 민족, 더 나아가서는 인류 복지에 이바지 한다는 거창한 구호는 너무나 뜬 구름 같구요.. ^^

저는 제가 하는 일에 대해 만족합니다만, 그래도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직업을 2개 정도 말해보라고 한다면,
하나는 세계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프로야구 선수 입니다. (물론, 1군에서 주전으로 뛰는..)

역사라는 것은 그 어떠한 자료도 진실되게 기록되어있지 않고, 여러 집필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되는 분야이지요. 상상속의 타임머신이 있어서, 정말 공정한 3자가 역사를 서술하지 않는 이상, 역사의 진실은 그 누구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의 저의 가치관과 생각을 바탕으로 세계 역사를 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프로야구 선수. 아~ 정말 인생의 순간 순간이 짜릿한 승부 아니겠습니까? 투수라면, 던지는 공 하나 하나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타자라면 들어서는 타석마다, 상대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 하나마다 승부의 연속이니...얼마나 인생이 짜릿하고 재미있을까요? 하루의 경기가 이길때도 있을 것이고, 질때도 있을 것이고, 한 시즌을 통해 잘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가 정말 실력과 운이 맞아줘서, 현역 선수로서의 은퇴후에도 야구팀 감독을 할수 있다면, 정말 그 직업 재미있는 직업 아닐까 하네요.. 물론 감독들은 성적에 따라 피가 마를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만, 매일 아픈 사람 만나거나, 범죄 저지르는 사람 만나는 직업 보다는 인생이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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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선동열이라는 분을 아주 좋아합니다. 어릴때 야구장가서 그분의 빠른 공으로 잡아내는 삼진을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 이후의 많은 노력과 일본에서의 실패와 성공들, 그리고 감독으로까지의 모든 야구 인생에서 정말 성공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은 잠시 현업을 떠나 있지만, 곧 어느 팀이든지 러브콜을 보낼 그런 분이지요.

이 분의 인생은 우여곡절도 많았겠지만, 얼마나 재미있었을까요? 자기가 던지는 공에 삼진으로 물러나는 수많은 타자들을 보면서, 쾌감을 느꼈겠지요. 물론 시즌 내내 잦은 출장에 몸이 재산이니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 등이 엄청 컸었겠지만요... 야구 선수들 중에는 과학자를 부러워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 비정규직 과학자이다 보니, 아직 미래가 불투명합니다만, 하지만 어느정도 수요가 있는 분야에서 열심히 하다가 보면 어떻게 잘 되겠지라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너무 긍정적인가요?

2011/08/05 01:51 2011/08/05 01:51
crinite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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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9일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만명에 달하는 연방 공무원의 임금을 2년간 동결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최근 계속 되는 재정적자의 폭이 커져서, 우선 공무원들부터 허리를 졸라 매겠다는 발표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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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구체적으로 지난 금요일, 미국 에너지부 장관, 스티븐 추로 부터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미국 연방 에너지부 및 소속의 기관 (Site, Facility, National Laboratory)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인원에 대해 임금과 보너스의 인상을 향후 2년간 중단한다'라는 것이였습니다.
물론 이 뒤에 고통분담의 차원이라는 상황 설명도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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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뭐 계약직이지만 연방 공무원에 포함되다보니... 저도 그 대상이 되어버렸네요.
제가 앞으로 여기에 있을 박사후 연구원 기간에는 연봉 인상이 없을 것 같네요.. 아쉽습니다. 쩝...
그나마 올해 연봉 좀 오른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요? ㅎ

미국의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하고 있었다면 훨씬 적은 연봉으로 살았을텐데..
뭐 거기에 비하면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2010/12/19 16:24 2010/12/19 16:24
crinite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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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구소 대강당에서 매년 치뤄지는 Post-doc Celebration 행사가 있었습니다.
올해는 Post-doc 2명을 선발해서 Linus Pauling Post-doc fellow를 수여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참고로 Linus Pauling (라이너스 폴링)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몇번 이름이 나오고,
다들 아시다시피(?)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이온의 화학결합 연구로 결국 노벨상까지 받았지요.
그 분이 이 곳 지역(Pacific Northwest- Oregon) 출신이라...그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이번 Post-doc fellow 제도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암튼, 폴링은 오레건 주립대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지요...
그리고 그 뒤로 많은 연구 업적을 발표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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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키에서. 발췌했습니다. ^^


라이너스 칼 폴링(Linus Carl Pauling, 1901년 2월 28일 - 1994년 8월 19일)은 노벨 화학상노벨 평화상 을 수상한 미국의 물리화학자이다.

DNA의 구조를 밝혀내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이 자신이 쓴 《이중 나선(Double Helix)》에서 라이너스 폴링을 "당시 생화학 분야의 권위자였으며, 가장 높은 수준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평가할 정도로 그는 분자생물학 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62년에는 지표 핵실험을 반대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혼자서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사람이다. (마리 퀴리는 물리학상을 남편과 함께 받았고 존 바딘은 두 번의 물리학상을 다른 사람과 함께 받았으며 프레데릭 생어는 1980년에 다른 사람과 함께 받았다.)


오늘 이 행사 하면서 연구소에서 Linus Pauling의 생존하고 있는 자식들까지 초대했더라구요..

암튼 오늘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이곳 PNNL에 현재 Post-doc이 200명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현재 연구소 인원이 4700명 가량 된다고 하는데.. 200명 뿐이라니.... 진짜 의외였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그룹에는 박사후 연구원이 제법 되는데 다른 그룹에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하네요...
모든게 연구비와 관련이 있는 것이겠지요....

2010/09/23 00:23 2010/09/23 00:23
crinite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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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주 지방에서 동쪽은 과일이 많이 재배됩니다. 시애틀처럼 비가 자주 오지 않으면서
적당히 건조하고, 일조량 많고, 큰 강 (Columbia River)이 캐나다 빙하에서 녹아서 이 곳을 흘러
마지막에는 오레건주와 워싱턴주 접경으로 빠져나가지요..

아무튼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과일은 포도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소노마, 나파 밸리 다음으로
이곳 콜럼비아 밸리가 와인 산지로 유명한데요... 여기 품종은 캘리포니아 품종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주로 이곳은 Merlot과 Chardonnay 품종이 많이 재배되는 것 같더라구요...

그 외에도 체리와 복숭아가 유명하다고 하는데요.. 지금 시즌은 체리가 나오는 기간 입니다.
체리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곳 워싱턴주에서는 빙 (Bing) 체리와 레이니어 (Rainier) 체리가 많이 생산된다고 하네요..
빙체리는 진한 붉은 남색의 체리? 그리고 레이니어 체리는 노란색 체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두 가지 체리를 동시에 맛볼 일이 생겼습니다.
오전에, 이 곳에 계신 모 박사님께서 체리 농장에 가서 레이니어 체리를 조금 땄는데..
맛보라면서 한 비닐봉지 가득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제가 일하는 그룹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마리 박사님 집 야외 파티 초대가 있었는데,
그 집 마당에도 큰 체리나무가 있어서, 체리를 따가라고 합니다. 체리 딴 후에는 저녁식사 야외 파티를 연다고... ^^;

그래서 우리 가족 모두는 오후에 마리 박사님네 집에 갔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따고 있었고, 어린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체리나무는 빙체리 나무입니다.
엄청 많이 열려있더군요..... 그런데 밑에는 이미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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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사진에 무연이 찍혔네요,
어제 실시한 아빠의 무연이 이발이 조금 실패했음을 여지 없이 보여주네요.. ㅋ



사람들 많지요, 하지만 뭐 우리 연구그룹이 130명 가까이 되는 것에 비하면.. 얼마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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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장함을 때우기 위해 과자 좀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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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이는 바로 그네와 미끄럼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엄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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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체리나무에 올라가서 체리도 좀 따고...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녁은 햄버거와 핫도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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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사진은 이미 저녁은 다 해치우고, 디저트로 수박과 과자를 먹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 무연아 미안하다.. 아빠가 너의 앞 머리카락를 제대로 못 잘라서... ㅋㅋㅋ


집에 와서, 오늘 얻은 두 가지 종류의 체리를 한 접시에 담아서 기념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밑에 손가락은 누구 손가락일까요? ^^; (참고로 아기 손가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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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레이니어 체리가 더 달고 맛있다는데, 전 잘 모르겠습니다. 둘다 달고 맛있어서요...ㅎㅎ


7월부터는 맛있는 복숭아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때는 우리도 직접 과수원에 가서 따 와야 겠습니다.
아무튼 오늘 아침에 축구가 져서 좀 아쉬웠었는데, 오후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낸 것 같네요..


2010/06/27 00:18 2010/06/27 00:18
crinite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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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j 2010/06/28 03:05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ㅋㅋㅋㅋㅋㅋ
    익사이팅하게 사는군..ㅋㅋ
    무연이 헤어... ㅋㅋ 다음엔 스타일좀 잘 살려줘.ㅋㅋ
    불교적으로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선진국에 태어난다는데? 가령 미국같은곳..ㅋㅋㅋㅋ푸핫.
    공원많아 좋네..
    lpga 가서 뛰면 소원이 없겠네. ㅋㅋㅋㅋ 암튼 여기 오면 좀 색다른 포스트들이 많아서 자주온다.
    서유견문록 ㅋㅋ

    • crinite 2010/07/01 23:36  편집/삭제  댓글 주소

      스타일은 계속 살아나겠지..
      아빠의 이발실력이 늘어나는 만큼.. ㅎㅎㅎ

이 프로그램은 일정이 매우 빡빡했습니다.
아침 8시 30분부터 늦게 끝나는 날은 밤 10시를 넘어서 끝나기도 했지요..
그래도, 마지막 날 교육이 금요일 오전에 끝나도록 되어 있어서 저 같은 경우에는 오후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저의 돌아오는 비행기는 Little Rock에서 저녁 7시 비행기였거든요...

우선 시내를 지나다 보면 굉장히 한국적인 문을 볼 수 있습니다. 송암무도문...
이게 뭔고 하니, 미국 태권도 협회를 조직하고 그 규모를 키운 이행웅 사범의 뜻을 기리기 위한 공원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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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래와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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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동상이 있고, 뒷편에는 이행웅 사범의 무술 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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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Little Rock에는 아래와 같은 전철이 다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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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빌 클린턴 대통령 센터와 공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저 멀리 보이더라구요..입구에서 한 컷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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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근처에 다다르자 아래와 같은 표지석이 있습니다. 'William J Clinton Presidential Center and Park'
Bill은 애칭이고 정식 이름은 William Jefferson Clinton 입니다. 아무튼 빌은 어릴적부터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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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 이러한 것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주변이 모두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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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ton Center 정면입니다. 
뭐 여길 들어가볼 필요는 전혀 없으니, 그냥 사진만 찍고 돌아섰지요...
아시아계 사람들의 전형적인 관광행태인가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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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길에 보니 이런 기념품 판매점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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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조금 걸어서, 맥아더 공원을 찾았습니다.
이 곳은 박물관과 공원을 같이 조성해 놓았는데, 박물관은 Arkansas Art Center랑 붙어 있었습니다.
박물관까지 들어가기는 좀 그래서 맥아도 공원을 좀 거닐다가 벤치에 앉아서 쉬다가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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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도 이 공원에 한쪽에는 이런 기념물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한국전 참전기념용사 추모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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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된 석판들이 꽤 많이 세워져 있고 각 석판마다 많은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국전에 참가한 미군이 약 180만명, 그중에 약 37,000명이 사망 했고, 10만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하네요
아칸소 주 출신 군인들도 481명이나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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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동상들은 그때의 모습이겠지요? 동생을 업고 있는 어린 학생과 미군?
그런데 한국인 키가 너무 작게 묘사된거 아닌가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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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 조성하는데도 우리 한국인의 지원이 무척 컸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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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태극기는 힘차게 펄럭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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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아래 사진은 Little Rock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도심지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저 멀리에서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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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게 많이 없던 도시이긴 합니다만, 저는 조금 이런 조용한 곳이 좋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든, 이번 출장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고, 지금도 상당히 부담입니다.

다음주 부터 열심히 해봐야죠... ㅎ

2010/04/17 23:28 2010/04/17 23:28
crinite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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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생 2010/04/19 02:40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견문이 넓어지겠군...ㅋㅋㅋ좋겠네


지난 월요일부터 5일간 XXXXX/XXXX 교육 프로그램이 아칸소주에서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지원을 해 주는 프로그램인데 이번에 총 85명이 참가를 했습니다.
참석자 명단을 보니, 대부분 대학의 조교수(Assistant Prof.)분들과 박사후 연구원(post-doc)들이 대부분이였습니다.
그 외 일부 대학원생들과, 부교수(Associate Prof.)분들, 그리고 회사에서 오신 분들도 계시구요...

아무튼 저의 현재 연구와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거기 분야의 연구 기법들을 배워와서 우리의 차후 연구에 써먹어보자면서, 저의 보스가 보내줬었습니다.
단순히 학회에 참석해서 현재의 연구 트렌드를 살펴보는 그런 기회가 아니라서
상당히 심적으로 부담도 되고, 가는 발걸음 보다 오는 발걸음이 훨씬 더 무거웠습니다.
왜냐구요? 윗 사람 입장에서는 input을 집어넣었으면, output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ㅡ.ㅡa ;;;


암튼, 일요일 오전에 이곳 공항에서 연구소에서 마련해준 비행기편으로 출발했습니다.
바로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도중에 콜로라도주 덴버 (Denver, Colorado)에서 다른 비행기편으로 갈아탔습니다.
콜로라도 주에 들어와서 바깥 풍경을 보니 아직 높은 산위에는 눈이 하얗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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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해서, 아칸소주 리틀락 (Little Rock, Arkansas) 에 도착했습니다. (Little Rock은 알칸소주의 주도)

여기서 잠깐! 이 발음 '아칸소' 
저는 옛날에는 아칸소주가 따로 있고 알캔자스 주가 따로 있는 줄 알았습니다.  ㅡㅡ;

영어로 주명이 Arkansas 인데, 마지막 s가 묵음입니다.
따라서 미국식 발음을 하면 '알컨싸~' 입니다.첫 글자에 강세!
이게 뜻은 강의 하류라는 뜻인데 어원이 프랑스어라고 하네요.

그리고, 이 주가 미국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주라고 합니다.
뭐 딱히 지하자원이 많지도 않고, 관광지도 별로 없고, 그냥 숲과 강이 많은 자연친화적인 주라고나 할까요?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는 좀 교외로 나가면 온천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주가 배출한 인물을 살펴보면.. 우리가 알만한 인물은 딱 두명이 있습니다. ㅋ
세계 1,2차 대전과 한국전쟁에서 활약했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그리고, 미국 전전 대통령 Bill Clinton!
전반적으로 관광지가 없다보니 이 두사람만 가지고도 관광지로 만들어놓았는데요...
아무튼 스케쥴 상 금요일 오후에 잠깐 여유가 있을 것 같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아래는 이번 프로그램이 진행된 Little Rock의 Peabody 호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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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소속기관이 바뀌고 첫 대외 무대에 등장입니다. 저의 명찰이 아래와 같이 준비되어 있더군요.
예전에 POSTECH으로 달고 외국에 다닐때는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PNNL로 명찰 달고 있으니, 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먼저 아는 척을 합니다. ㅎ...
뭐 제가 있는 그룹의 그룹장을 잘 알고, 연구장비가 굉장히 좋다라고 알고 있다는 말이 대부분이지요..
그러면 저는 또 매번 거의 비슷한 레파토리의 대답을..ㅋ (앞으로 좀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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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5명의 참가자와 함께 이 곳에서 1주일 내내 앉아 있었습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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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수요일에 있었던 이 곳에서 준비한 저녁식사가 있었습니다.
잠시 밖에 나갔다 와야 할 일이 있어서 한 컷 재빨리 찍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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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텔이 강변을 끼고 있어서 풍경이 좋습니다.
밑에 보면 유람선도 지나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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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곳에서의 교육은 상당히 부담이 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의 관심이 되는 부분이 제가 하는 쪽하고는 거리가 멀더라구요...
그나마 정말 다행인 것은 교육 자료를 모두 pdf로 변환해서 가져 갈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나중에 다시 필요한 부분은 좀더 깊이 있게 살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부족한 저에게 이런 기회를 준.. 우리 보스에게 충성을 맹세해야겠습니다. ㅋ

2010/04/17 23:23 2010/04/17 23:23
crinite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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